유채 1881–1973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청색 시대가 막 시작될 무렵 그린 《Maternité》(1901), 막내딸 팔로마를 그린 《L’enfant à l’orange》(1951), 만년의 유화 《Le Peintre》(1967)를 취급합니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화가이자 소묘가, 조각가, 도예가, 판화가로서 남다르게 다작했으며, 모든 매체를 두려움 없이 탐구하고 생애의 어느 단계에서나 예술의 규범에 도전했다. 여덟 살에 첫 작품을 그렸고, 그 재능은 일찍부터 분명했다.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친구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에 깊이 영향을 받아 ‘청색 시대’에 들어선다. 차갑고 우울한 파랑이 지배하는 이 시기는 고독, 가난, 늙음을 주제로 삼았다. 1905년에는 ‘장밋빛 시대’가 이어져 서커스 예인, 곡예사, 연인들이 화면에 등장하며 따뜻함과 다정함이 돌아온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로 전통과의 급진적 단절을 이루며 큐비즘의 시작을 알린다. 1914년까지 조르주 브라크와 긴밀히 협업하여 고전적 원근법을 해체하고 기하학적 파편화로 공간을 재구성함으로써, 근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의 토대를 세웠다.
1920년대에 그의 작품은 다시 변화하여 초현실주의의 꿈 같은 언어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나, 피카소는 하나의 운동에 머무르지 않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유럽에서의 파시즘 대두에 응답한다. 1937년, 프랑코군의 바스크 마을 폭격에 대한 기념비적이고 참담한 응답으로 《게르니카》를 제작했다. 이 그림은 곧 공포와 저항의 보편적 상징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남프랑스에 자리를 잡고, 특히 발로리스에서 도예에 몰두한다. 이 시기의 작품은 한층 자발적이고 유희적이었으며, 아이들 그림의 천진함과 직접성에서 영감을 얻는 일이 많았다. 생의 마지막까지 피카소는 쇠하지 않는 에너지로 제작을 이어가며 거장들을 다시 찾고, 형태와 몸짓을 다시 구상하며, 늘 예술의 갱신을 좇았다.
형식상의 혁신과 실천의 폭 양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예술가로 평가받곤 하는 피카소는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1973년 무쟁에서 세상을 떠나며, 방대하고 변화무쌍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군을 남겼다.
《画家》1967 캔버스에 유채(원본 캔버스) 100 × 81 cm



